임청각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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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인물들
 
이광민

조카(둘째 동생 이봉희의 장남)

1895~1945

건국훈장  독립장

신흥학교 교관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신흥학우단을 조직하고, 이들을 옮겨 비밀 병영을 만든 것이 백서농장이다. 독립군을 양성하는 기반이 된 소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거친 청년들은 백서농장뿐만 아니라, 마록구농장, 길남장 같은 곳에서 좀 더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독립군으로 성장했다. 이들 기지는 모두 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였지만, 사실상 둔병체제를 갖춘 병영이었다. 이처럼 농장 이름을 내걸고 병영기능까지 갖춘 기지를 건설하는 데 법흥마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앞장섰다. ​​​​​

​ 이광민은 특히 신흥강습소 출신으로 이광민은 신흥강습소를 졸업한 뒤 민족교육의 일선에 나서 동화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었다. 백서농장 기지 건설과 군사 활동에도 주축으로 참여했으며, 안동의 오미마을 출신 김만수와 무실마을 출신 류동범(류기동)이 서로군정서 헌병으로 1924년 4월 7일에 펼친 하얼빈 삼의사 투쟁은 그러한 노력의 산물 가운데 하나였다. 김동삼이 주축이 된 대한통의부와 남만주 일대 동포사회를 이끄는 정의부의 운영에도 이준형과 함께 이광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약하였다.

​이광민은 또한 백부 이상룡이 70대의 고령으로 활동이 어렵게 되자 그를 일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오지인 길림성 서란현 소고전자에 모셨다. 1932년 5월 12일 이상룡이 조국이 광복되기 전까지는 유해를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거하자 이준형과 광민 등은 유언대로 우선 그곳 소고전자에 가묘를 만들어 이상룡을 모셨다. 이상룡이 서거한 뒤 이상룡 일가와 광민의 일가 대부분은 국내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이끌어 준 백부 이상룡이 이 세상에 없다고 하여 광민은 만주에서의 독립투쟁을 그만 둘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끝까지 만주 땅을 떠나지 않고 동지들을 이끌고 항일전선에 앞장섰다. 일제가 세력을 키워 만주를 삼킨 후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중국 대륙 침략을 확대해가자 광민은 조국이 독립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1938년 하얼빈의 취원장에 토지를 구입해 가족묘를 조성하고 이상룡의 유해를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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