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이상룡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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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 평가

석주 이상룡 평가

  • 임시정부 이승만의 후임으로는 인애하는 덕이 있는 이상룡 같은 이를 추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산 안창호<1925년 1월 이유필에게 보낸 편지 내용(국회도서관 도산 안창호자료집: 이상룡은 임정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초대 국무령으로 선출되었다)>
  • 석주 이상룡은 우당 이회영의 가장 가까운 동지이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만주의 차가운 삭풍 속 3칸 방에 석주 3대와 동지들이 모여 추위에 떨며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임청각은 지금도 일제시대의 시련을 이겨내는 우리들 마음 속 애국의 도색이다. 이종찬 (재)우당 장학회 이사장
  • 임청각을 하루속히 원상대로 복원해야 한다. 이는 우리 구국운동의 성지인 임청각의 맥을 끊어놓기 위해 집 마당으로 철길을 낸 일제의 잔재를 처리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 임청각을 석주 이상룡의 삶의 향기를 널리 전파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석주의 삶은 자신의 이익추구에만 골몰하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불씨가 될 것이다. 김병일(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석주 이상룡은 ‘독립운동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다.
    한국과 중국에서 50여년 계속된 이상룡의 독립운동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광림(국회의원, 국회정보위원장)
  • 선비는 글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뜻을 세워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라가 무너졌을 때 몸 바쳐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았다면 선비가 아니다. 임청각은 선비정신과 겨레사랑의 정수라 평가될 만하다. 김희곤(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
  • 400년 전에는 3대가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를 해 삼세유허비를 세웠고, 400년 후에는 다시 3대가 기득권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으니 임청각은 세속을 벗고 인간의 자존을 지킨 진정한 명문가이다. 조용헌(조용헌의 명문가 저자, 원광대 교수)
  • 석주 이상룡 같은 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유 대한민국에서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분이 세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후손들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생각한다. 서청원(7선 국회의원)
  • 임청각은 조선 정기의 근원이다. 조동걸(국민대 사학과 명에교수)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천명했다. 석주 선생께서 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으로 취임하신 것은 독립운동계의 최고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권영세(안동시장)
  • 석주 이상룡은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개인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구국투쟁에 헌신하신 대지도자이시다. 석주 선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늦었지만 올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군헌(새누리당 사무총장)
  • 왜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석주를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가?
    바로 석주 이상룡은 국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김중위(초대 환경부장관)
  • 누가 독립을 못보고 돌아가신 이상룡의 삶을 애석하다 하는가? 그는 진실로 참다운 성실함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았다.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고 있어 영원히 이 땅 이 겨레와 함께 할 것이다. 심진(재미사업가, 이상룡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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