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및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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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8년 1세1858년 11월 24일 아버지 이승목과 어머니 안동 권씨의 장남으로 안동 임청각에서 태어남
- 1873년 15세부친상을 당함
- 1876년 18세조부의 명을 받들어 영남학계의 거유 서산 김흥락 문하에서 수학
- 1895년 38세명성왕후가 시해당하고, 외숙인 권세연을 대장으로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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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48세일제의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가야산에 의병기지를 구축함
- 1907년 50세유인식, 김동삼 등과 함께 신식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구국계몽운동에 앞장 섬
- 1911년 54세1월 50여 가구를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 4월 서간도 최초의 한인 자치단체이자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를 설립해 초대사장에 선출됨.
이회영, 김대락, 김동삼 등과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학교 설립 - 1913년 56세 <대동역사>를 저술해 민족교육기관이자 신흥무관학교 교재로 사용
- 1918년 61세김좌진, 김동삼 등과 무오년의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전쟁을 선포함
- 1919년 62세독립운동기관인 한족회를 설립하여 회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서로군정서를 설립해 독판에 취임
- 1920년 63세서로군정서의 지청천 사령관, 북간도의 독립군들과 연합해 청산리대첩에 참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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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 66세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김동삼, 이진산, 배천택 등을 서간도 대표로 파견하고 김동삼을 의장으로 선출케 함
- 1924년 67세남만주 항일운동을 총괄한 정의부 설립
- 1925년 68세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선출됨
- 1926년 69세국무령 사임
- 1928년 71세전 민족유일당과 삼부통합회의 개최
- 1932년 75세광복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내 유골을 조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중국 길림성 서란현에서 서거
- 1990년유해 환국하여 대전국립묘지에 안장
- 1996년유해 서울 동작구의 국립현충원 임정수반묘역으로 옮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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