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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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인물들
 
허 은(1907-1997)
일창 허발의 외동딸로 석주 이
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
리가」라는 회고록을 남겼다.

김우락의 손부이자 이중숙의 며느리인 허은(1907~1997)은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왕산 허위가 그녀의 재종조부이며, 이육사의 어머니가 그녀의 종고모이다. ​​​​​​8세 때인 1915년 항일투사인 아버지를 따라 만주 영안현으로 망명한 허은은 16세가 되던 1922년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혼인, 임청각의 종부가 되었다. 그녀의 반평생은 시조부와 시부, 그리고 남편의 3대에 걸친 항일투쟁을 뒷바라지한 삶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서로군정서 대원들에게 의복을 만들어주는 등 이상룡, 김동삼, 김형식 등 독립투사들의 만주 항일 운동을 후방에서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자신이 “항일투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항일투사의 집으로 시집간 것도 다 운명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귀국 후 만주생활을 담은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를 출간했다​​​​. ​​​​​​​​

​​허은 여사는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 뼈에 사무친 통한의 말을 남겼다.

 

"독립운동 하는 어른들 뒷바라지 하다 귀국하고 보니 나라의 운명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친정도 시가도 양쪽 집안은 거의 몰락하다시피 되어 있었다. 양가 일찍 솔가하여 만주벌판에서 오로지 항일투쟁에만 매달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안이 망한 것보다 가난보다 허 은 여사를 멍들게 한 진정한 한은 따로 있었다.

"그때 친일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호의호식하며 좋은 학교에서 최신식 공부도 많이 했더라. 그들은 일본, 미국 등에서 외국유학도 하는 특권을 많이 누렸으니 훌륭하게 성공할 수밖에. 그러나 우리같이 쫓겨 다니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자손들의 교육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오로지 어른들의 독립투쟁, 그것만이 직접 보고 배운 산교육이었다. 목숨을 항상 내놓고 다녔으니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그 허허벌판 황야에 묻힌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불모지에 잡초처럼 살았지그녀가 지은 내방가사 ‘회상’에서 그 고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회 상

  이국풍토 견문 없이 십육 세가 되었으니

  성혼(成婚) 운운 하시다가 안동땅 임청각은

  동방의 명문이요 세대로 학행도덕(學行道德)

  조선의 국록지신 국은이 망극한데

  선왕(先王)구(舅) 애국충신 백이숙제 효칙(效則)하셔

  배일(排日) 결심 백절불굴 이국(異國) 유락(遊落) 수십여 년

  우리 대한 복국(復國) 경영 국내에 뉘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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