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는 항일민족운동의 정통성을 가진 신민회의 ‘신민흥국(新民興國)’이념을 계승하고, 신민회 내의 ‘독립전쟁론’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설립한 무관학교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과 이상룡이 일제강점기에 서간도에 설립한 독립군 양성 학교로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 마을의 한 옥수수 창고에서 문을 연 ‘신흥강습소’에서 출발한다. 안동의 협동학교 구성원들이 그 뜻과 체제를 고스란히 만주로 옮겨놓은 것이라 평가될 수 있는 신흥강습소는 어려운 한계 속에서도 군사력 양성이라는 길을 열었다. 이상룡의 동생 이봉희가 초기 교장을 맡았으며 이승화, 이준형, 이형국 등이 설립과 운영에 참가하였으니 법흥문중이 신흥무관학교에 기여한 바는 결코 적지 않았다. 또한 어린 이광민은 신흥강습소를 졸업한 뒤 민족교육의 일선에 나서 동화학교의 교사로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었다. 신흥무관학교는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계승하고 무려 3천 5백 명이 넘는 항일 전사를 배출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작사
석주 이상룡의 아들 동구 이준형이 미국군가 Marching Through Georgiadp 가사를 붙여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은 늘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애국가와 이 교가를 부르며 조국의 광복을 꿈꾸었다.
목놓아 노래 부르며 결의를 다지고 하루하루를 시작했던 생도들은 광복운동의 주역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