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각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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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인물들
 
이준형(이상룡 아들)
1895~1942
건국훈장 애국장


독립운동 기지를 유지하고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사람과 돈이 만주로 공급되어야 했다. 만주에서 특파원을 보내 군자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국내에서 지원세력이 군자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이준형도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한 후 국내에 비밀리에 드나든 기록이 있다. 법흥 문중은 물론이고 예천 용궁의 이규홍(세심헌)에게 군자금을 받아 만주로 향한 기록도 남아 있다.

서간도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지원하는 활동은 국내에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났는데 대구에서 결성된 광복회가 대표적이다. 광복회는 국내에서 만주로 연결되는 통로 곳곳에 상점을 내고 여관을 만들어 연결망을 확보하고 만주로 사람과 자금을 보내 독립군을 길러내어 독립전쟁을 하는 데 일조했다. 여기에 법흥문중 사람 이종영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자신의 집을 광복회와 독립군들의 활동 거점으로 제공하여 투사들이 국내에 잠입하여 요인을 암살하거나 군자금을 확보하는 일에 동참했다. 이러한 정황은 이상룡, 이준형과 연결되어 이종영이 국내와 서간도를 있는 중간점 역할을 담당했음을 확인해 준다.

 

경학사, 백서농장, 서로군정서 등에서 화동하며 부친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이상룡의 서거 후 유고를 안고 귀국한 이준형은 십여 년간 일제의 끈질긴 고문과 협박에 시달리며 변절의 요구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일제에 의해 중앙선 철도 부설공사가 진행되면서 종가 앞마당이 장터 앞마당처럼 변해가자 무너지는 자존감을 억제하기 힘들어졌다. 마침내 1942년 9월, 아버지 석주 이상룡의 문집인 ‘석주유고’ 정리를 마치고 난 후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치욕을 더 보탤 뿐이다“, “도증(장손) 형제는 토지를 팔고 재산을 축소하더라도 교육을 시켜라“는 유서를 아들 병화에게 남기고 67회 생일에 목의 동맥을 끊어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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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쓴 이준형의 시 -죽을지언정 종이 될 수는 없다

솔잎을 썰어먹고 곡식을 먹지 않으려 하는데 내 평생 회고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엉성한 재능으로 큰 은혜 저버린 것 한탄하고 부질없이 병든 몸으로 깊이 숨는 것 배우네

하늘은 근역에 봄 돌아오게 하려는 기미 아직 없고 시운은 상전벽해 변천 되는 것 마침내 보게 되네.

귀먹어리 벙어리로 구차히 사는 것 도리어 가소롭로니 아버님 따라 하늘나라에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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