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단과 백서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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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단과 백서농장
 
소배차 백서농장 터. 경상북도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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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단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 인사들이 참여하여 만주 통화현에 조직된 자치 기구이다.

만주 한인사회의 자치를 담당하고 이를 토대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여 독립전쟁을 위한 준비를 목표로 부민단이 설립되었다.

1912년 경학사가 해체되고 나서 한인사회를 지도할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게 되어, 1912년 가을 통화현에 부민단이 조직되었다. 부민단은 허혁에 이어 이상룡이 단장을 맡았으며 김동삼, 김형식 등 안동 출신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부민단은 재만 한인의 자치를 담당하고 재만 한인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분쟁을 해결하는 일, 재만 동포들을 대신하여 중국인 또는 중국관청과의 분쟁사건을 맡아서 처리하는 일, 재만 한인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맡아 민족교육을 시행하는 일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독립군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신흥강습소를 운영하고, 신흥강습소의 졸업생을 주축으로 한 신흥학우단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백서농장

1914년 이후에는 독립운동기지인 백서농장을 건설하여 항일투쟁에 전력을 기울였다. 신흥무관하교를 옮기고 백서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농사도 짓고 학생을 가르쳤다. 우리 독립군부대 최초 군영이었던 백서농장은 유하현 팔리 쏘베차에 있었다. 백서농장은 농장이 아니라 실제로는 병사 양성을 위한 군영이었지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농장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14년 가을부터 신흥학우단과 부민단 간부들은 쏘베차 지역 일대에 벌목을 시작하여 병영을 만든 후, 1914년부터 신흥학교 1회부터 4회까지 졸업생 일부와 신흥학교 각 분교와 노동강습소에서 훈련된 385명을 입영시켰다.

백서농장의 장주는 안동출신 일송 김동삼 선생으로 이 기회를 틈타서 독립전쟁을 펼치려다가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장차 대일무장투쟁에 대비하였다.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19193·1 운동 후 한족회의 지시로 1920년에 문을 닫았다. 여기에 배속된 이들은 곧 상해임시정부의 관할 아래에 있었던 서간도지구 군사기관인 서로 군정서로 확대 개편 되었다.

이곳에서의 4년간에 걸친 고난은 이후 항일유격전에 큰 교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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