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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 | 안동사람들이 만주에서 펼친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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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23 15:24 조회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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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사람들이 만주에서 펼친 항일투쟁. ​​​​

김희곤(경상북도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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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만주망명 백주년이라는 말이 거듭 들려왔다. 만주망명이 꼭 백 년 전에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잃은 뒤 본격적으로 만주(지금 중국의 동북지역)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려고 나선 발걸음을 따진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대개 백주년이라면 특별하게 여기고, 이를 기리는 사업을 펼치게 마련이다. 정부가 나서서 기념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문중이나 후손이 나서서 추진하기도 한다. 힘을 가진 집안은 능력을 발휘하여 기념사업을 번듯하게 펼치고 조상을 집중적으로 내세운다. 이와 달리 기념사업의 불빛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도, 햇살 한 번 받지 못하고 역사의 그늘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물도 많다. 역사의 조명과 평가가 후손의 역량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기야 분묘의 호화롭기가 조상의 인물 됨됨이보다는 후손들의 역량에 비례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만주에서 펼친 독립운동에 안동사람만큼 기여도가 높은 경우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조명을 받고 평가되었는지 되물어보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그분들의 망명은 그 어느 곳 출신보다 집중적이고 대규모였다. 이들은 문중별 집단 기획 망명이었다. 안동문화권의 주요 문중과 학맥, 혼맥으로 얽힌 인물들이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망명한 것이다. 김대락과 김동삼이 이끈 내앞마을 의성김씨, 이상룡이 앞장선 안동시내 법흥과 와룡 도곡마을의 고성이씨, 이원일로 대표되는 도산면 하계와 청구의 진성이씨, 류인식을 비롯한 삼산마을 전주류씨, 여기에 예안의 흥해배씨 등은 모두 문중 단위로 움직인 망명이었다. 이들이 앞장서자, 이들과 학맥과 혼맥을 가진 주변 지역에서도 동참하였다. 울진 평해 사동마을의 평해황씨, 평해 직산의 경주이씨, 영덕 축산의 도곡마을 무안박씨, 영양 주실마을 한양조씨 등이 대표적이다.

 

1911년 안동문화권의 만주 집단망명은 오로지 항일투쟁에 목적을 두었다. 기지를 건설하여 독립군을 기르고, 독립전쟁을 벌여 조국의 광복을 이루겠다는 것이 이들의 오직 하나뿐인 바람이었다. 고향에서 누리던 모든 특권을 내던지고 떠난 그들이지만, 마주친 환경은 날마다 죽음을 넘나드는 것이었고, 실제로 많은 희생이 줄을 이었다.

 

숱한 악조건을 이겨내면서 펼친 이들의 활동은 19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성과를 이루기 시작했고, 일본군과 맞서 싸워 이기는 열매를 거두기도 했다. 1920년대에 들어 새로 들어온 이념까지 받아들여 만주지역 동포사회를 통솔하면서,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1930년대에 들면, 만주망명 초기에 어렸던 아이들이 자라나 항일투쟁 제2세대가 되고, 이제는 이들이 최전선에 나섰다. 1940년이면 만주지역 항일투쟁은 사실상 대세를 마무리 짓는다. 따라서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이 펼친 독립전쟁은 대개 30년으로 잡으면 무리가 없다. 그런데 한 해 동안 펼쳐진 기념사업을 보면, 거의 모두 1910년대 초반의 활동에만 무게를 실어 눈길을 주고 평가하였던 것 같다. 사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뒤 30년 세월이다.

 

이 책은 안동사람들이 만주에서 펼친 항일투쟁 30년 역사를 담았다. 함께 그 길을 간 가족들, 더욱이 여인들의 이야기도 담으려 애를 썼다.

 

이 책은 안동사람들이 만주에서 펼친 항일투쟁 30년 역사를 담았다. 1911년 안동문화권의 만주 집단망명은 오로지 항일투쟁에 목적을 두었다.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끊이질 않고 펼쳐진 안동사람들의 항일전쟁, 30년 전쟁은 안동사람들의 정신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100년 전에 시작하여 70년 전에 끝난 그 전쟁,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그 장엄한 투쟁의 대열에 안동사람들이 보여준 끈질긴 저항력은 바로 안동문화의 정신적 토대 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주에서 펼친 안동사람들의 항일투쟁 30년을 정리하면, 두 가지 특성이 드러난다. 하나는 그들이 대의명분과 의리정신이란 퇴계학맥의 특성을 고스란히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득이 되는 길보다 바른 길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안동사람들의 선택과 실천이 빛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통합성이다. 만주망명을 이끌어 간 주역들은 대부분 혁신유림이었다. 위정척사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한 곳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고 추진하던 혁신유림들이, 나라가 무너지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이들은 사회주의를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진보성을 보였다. 보수와 진보가 가진 성격과 존재를 모두 인정하면서, 통합의 길을 찾아 나간 것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탁상공론하고 있는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모범이 될 만하다. 이러한 길을 걸어간 안동사람들의 정신은 편 가르기로 정신이 없는 이 시대 사람들이 배워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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